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후기|인터스텔라와 비교해보니 보이는 놀란의 천재성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후기|인터스텔라와 비교해보니 보이는 놀란의 천재성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와 《인터스텔라》 비교 리뷰

우주와 바다 끝에서 결국 인간을 말하다

※ 이 글에는 《인터스텔라》의 내용에 관한 일부 언급이 있습니다. 《오디세이》는 핵심 반전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 선에서 작성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 ‘이 감독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인터스텔라》를 처음 봤을 때 그랬다.

우주와 블랙홀, 중력과 시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복잡한 이야기가 결국 아버지와 딸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관계로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번 《오디세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번에는 우주가 아니다.

수천 년 전 신화의 세계다.

놀란은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를 가져와 바다와 전쟁, 인간과 신, 괴물과 운명이 뒤엉킨 거대한 세계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인터스텔라》와 《오디세이》는 시대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고 배경도 완전히 다른데, 영화를 보고 나면 묘하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인간이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의 힘을 다시 느꼈다.


솔직히 놀란의 영화는 쉬운 영화가 아니다

놀란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조건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생각하지 않고 보면 오히려 지루할 수도 있다.

《인터스텔라》만 해도 그렇다.

웜홀, 블랙홀, 중력, 상대성이론, 시간의 차이 같은 개념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밀러 행성에서 몇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지구에서는 엄청난 시간이 흘러버린다는 설정도 영화의 구조를 이해해야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는 SF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오디세이》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고대 영웅이 괴물을 물리치고 모험을 펼치는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한다면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영화가 좋다.

영화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할 여백을 남겨주는 영화.

다음 장면을 예상하고, 앞에서 봤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등장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말이다.

놀란의 영화에는 그런 재미가 있다.


우주로 떠난 남자와 바다를 떠도는 남자

인터스텔라의 우주와 오디세이의 바다를 대비한 영화적 이미지

두 영화를 비교하다가 아주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인터스텔라》의 쿠퍼는 집을 떠나는 남자다.

인류가 살아남을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우주로 떠난다.

반면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남자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그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왕국도, 더 큰 명예도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사람은 가족을 떠나 우주로 향하고,

한 사람은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바다를 건넌다.

방향은 완전히 반대다.

그런데 목적지는 같다.

집이다.

이 지점부터 《인터스텔라》와 《오디세이》가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인터스텔라》의 진짜 주인공은 우주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인터스텔라》를 다시 생각해보면 가장 무서운 존재는 블랙홀도 아니고 우주도 아니다.

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에서는 시간마저 인간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몇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지구에서는 수십 년이 흐른다.

쿠퍼에게는 잠깐이었지만 어린 딸 머피에게는 인생의 상당 부분이다.

이 설정이 무서운 이유는 과학 때문만은 아니다.

시간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놀란은 상대성이론이라는 어려운 과학 개념을 인간의 감정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거대한 우주 장면만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버린 것을 깨닫는 인간의 얼굴이다.

이것이 놀란이 스케일을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거대하게 만들고 인간은 아주 작게 만든다.

그러면 오히려 인간의 감정이 더 크게 보인다.


《오디세이》에서는 우주 대신 바다가 인간을 삼킨다

《오디세이》에서는 그 역할을 바다가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무엇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자연과 신화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인터스텔라》의 우주를 떠올렸다.

우주와 바다.

둘 다 인간이 완전히 지배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우주의 압도적인 크기 속으로 들어갔다면,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인간의 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놀란은 그 거대한 공간을 단순히 아름답게 보여주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 안에 인간을 집어넣고 선택하게 만든다.

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믿을 것인가.

의심할 것인가.

그리고 끝까지 돌아갈 것인가.


놀란의 압도적인 영상미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거대한 우주와 자연 앞에 작게 서 있는 인간을 표현한 시네마틱 이미지

크리스토퍼 놀란을 이야기하면서 IMAX를 빼놓기는 어렵다.

《인터스텔라》에서도 광활한 우주와 거대한 천체를 바라볼 때 인간은 점처럼 작아진다.

이번 《오디세이》에서는 그 감각이 더욱 강해졌다.

넓은 바다와 거대한 자연, 전쟁과 신화적 공간이 화면을 채운다.

특히 놀란은 CG로 모든 것을 번쩍거리게 만드는 방식보다 실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영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놀란 영화는 스마트폰이나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가 크다.

화면이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리와 화면이 관객을 영화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내가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면,

《오디세이》에서는 내가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놀란에게 IMAX는 단순히 화면을 크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진짜 재능은 스토리를 숨기는 방법에 있다

개인적으로 놀란의 가장 뛰어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스토리 전개다.

놀란은 관객에게 처음부터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정보를 조금씩 흘린다.

관객은 그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이야기를 조립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그래서 그 장면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인터스텔라》 후반부가 대표적이다.

초반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후반부와 연결되면서 앞에서 봤던 장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이 일반적인 반전 영화와 놀란 영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놀란의 반전은 단순히

“사실 범인은 이 사람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반전이 일어나는 순간 앞에서 봤던 영화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두 번 보면 처음 볼 때와 다른 영화가 된다.


이미 결말을 아는 《오디세이》도 놀란에게 가면 달라진다

《오디세이》의 재미있는 점은 원작이 이미 수천 년 동안 알려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모험을 겪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영화다.

관객이 어느 정도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란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만이 아니다.

그 사건을

언제 보여줄 것인가.

무엇을 먼저 보여줄 것인가.

무엇을 관객에게 숨길 것인가.

이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익숙한 신화인데도 놀란의 영화가 된다.

나는 이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인터스텔라》는 미래의 신화, 《오디세이》는 과거에서 가져온 신화

두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터스텔라》는 놀란이 만든 미래의 신화가 아니었을까.

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수많은 위험을 통과한다.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결된다.

영웅 신화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오디세이》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야기해온 고대 신화다.

놀란은 그것을 21세기의 기술과 자신의 영화 언어를 이용해 다시 만들어냈다.

그래서 나는 두 작품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인터스텔라》가 미래를 배경으로 만든 신화라면, 《오디세이》는 고대의 신화를 미래의 영화 기술로 다시 만든 작품이다.

시간의 방향만 다를 뿐이다.


생각 없이 보면 지루하고, 생각하면서 보면 빠져든다

이것이 내가 놀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모든 사람이 좋아할 필요는 없다.

빠른 액션과 명확한 이야기, 쉽게 이해되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놀란 영화의 긴 러닝타임과 복잡한 구조가 피곤할 수 있다.

《오디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한 스케일만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다면 예상보다 묵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오디세이》를 두고 압도적인 스케일과 영화적 야심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평가한 비평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까?’

그리고

‘이 감독은 도대체 어디까지 상상한 것일까?’

그 질문을 계속하면서 영화를 봤다.

그러다 보니 긴 러닝타임보다 놀란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나는 영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감독의 상상력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러자 훨씬 재미있었다.


스케일은 더 커졌지만 놀란이 바라보는 곳은 여전히 인간이다

놀란 영화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를 떠났다.

《덩케르크》에서는 거대한 전쟁을 다뤘다.

《테넷》에서는 시간의 방향을 뒤집었다.

《오펜하이머》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원자폭탄을 다뤘다.

그리고 《오디세이》에서는 서양 문명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런데 놀란이 바라보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이다.

거대한 사건 한가운데 놓인 한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 선택으로 무엇을 잃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가.

그래서 놀란 영화에서 스케일은 커질수록 오히려 인간은 작아진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의 선택은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인터스텔라》와 《오디세이》에서 발견한 결정적인 공통점

우주로 떠나는 인간과 바다를 건너 돌아가는 인간을 대비한 이미지

결국 두 영화 모두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터스텔라》의 쿠퍼는 가족을 떠난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가족에게 돌아간다.

우주와 바다.

미래와 고대.

과학과 신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따라가 보면 두 사람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놀란은 그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지기 위해 우주를 만들고, 블랙홀을 만들고, 거대한 바다와 신화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것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특별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디세이》를 보고 다시 《인터스텔라》가 생각났다

인터스텔라와 오디세이의 시간과 귀환이라는 공통 주제를 표현한 이미지

영화가 끝난 뒤 《오디세이》만 생각난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봤던 《인터스텔라》의 장면들이 함께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놀란은 새로운 영화를 만들 때마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비슷한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운명이 인간을 계속 밀어낸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버틸 것인가.

그리고 아무리 먼 곳까지 가더라도 인간이 결국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인터스텔라》에서는 그 답을 우주에서 찾았고,

《오디세이》에서는 바다에서 찾는다.


마치며 – 나는 놀란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상상력을 여행한다

《오디세이》가 모든 사람에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볼 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본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이번에는 이 사람이 어디까지 상상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따라간다.

그러면 영화가 달라진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의 끝으로 데려갔고,

《오디세이》에서는 수천 년 전 인간이 상상했던 신화의 세계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렇게 엄청나게 먼 곳까지 관객을 데려간 뒤 놀란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가족.

사랑.

기다림.

선택.

그리고 귀환.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진짜 천재성은 거대한 영화를 만드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주만큼 거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도 마지막에는 한 인간의 감정을 남기는 것.

나는 그것이 놀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어렵고 길어도 또 극장을 찾게 된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줄 평

《인터스텔라》가 우주 끝에서 가족을 바라본 영화라면, 《오디세이》는 신화의 끝에서 다시 집을 바라보는 영화다.

개인적인 평가

스토리 전개 : ★★★★★
영상미·스케일 : ★★★★★
몰입도 : ★★★★☆
대중적인 접근성 : ★★★☆☆
영화를 본 뒤 생각하게 만드는 힘 : ★★★★★

총평 : ★★★★☆ 4.5 / 5

쉽게 소비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오디세이》는 극장에서 경험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었다.


FAQ

Q. 《오디세이》를 보기 전에 원작을 읽어야 할까?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디세우스와 트로이 전쟁, 고향 이타카 정도의 기본적인 배경을 알고 보면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Q. 《인터스텔라》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오디세이》도 좋아할까?

장르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거대한 세계 안에서 인간의 선택과 시간, 가족, 귀환 같은 주제를 바라보는 놀란 특유의 영화 세계를 좋아했다면 두 작품 사이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Q. 《오디세이》는 지루한 영화인가?

빠른 전개의 오락영화를 기대한다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의 구조와 인물의 선택, 신화를 놀란이 어떻게 재해석했는지를 따라가면서 본다면 상당히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Q. 《오디세이》는 IMAX로 볼 가치가 있을까?

이 작품에서 IMAX는 단순한 부가 요소라기보다 영화의 공간감과 스케일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에 가깝다. 가능하다면 큰 화면과 좋은 음향 환경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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